보훈문화의 선진화를 위한 무공훈장의 가치 재인식

 

이선호 : 한국안보평론가 협회장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 순의 훈격인 대한민국의 무공훈장은 상훈법에 의하면, 인헌 무공훈장을 제외하고는 적과의 교전현장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자에 한하여 수여하도록 하고 있으며, 무공수훈자는 국가유공자로서 정부로부터 수훈에 따른 일정액의 보상을 받도록 되어 있는 바, 그 목적가치가 고양되고 있다. 한마디로 무공훈장은 국가권위의 표상이며, 살신보국자에 대한 국가시혜라고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현재까지 태극무공후장 수상자가 무려 320명이나 되니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란 두 전쟁을 치렀고 대간첩작전이 수시로 행하여지기는 했지만, 2세기에 걸쳐 전세계를 주무대로 수십회의 대규모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받은 명예훈장 수상자는 2556명인데 비하면 우리의 태극무공훈장 320명은 남발이라 할만하다. 이 숫자도 한국전쟁시 163명과 베트남 전쟁시 16명을 제하면 나머지 141명은 비 전쟁기간 중의 공로나 외국 군인에가 수여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최고 훈격인 태극무공훈장은 미국의 명예훈장( medal of honor)이나 영국의 빅토리아 십자장 처럼 전쟁영웅에게만 수여됨으로서 그 희소가치와 국가의 권위를 지키도록 해야 할 것 임 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했음은 큰 문제라고 하겠다.

설상가상으로 당국이 결정적 시행착오를 범한 것은 5.18 광주 사태에 투입된 일부 장병에게도 적과 싸운 것이 아니라 격렬하게 시위하는 민간인을 진압한 공로로 무공훈장을 수여하였으며, 그 중에는 한 개의 태국무공훈장까지 포함했었다는 사실이다. 불행 중 다행히 이들 잘못 수여된 훈장은 수년전에 모두 당국에 의해 치탈 무효화되었으니 참으로 잘한 법치국가다운 의법 사후처리였었다.

그리고 일부 소수에 불과하지만 전쟁 중 허위 조작 또는 과장 보고된 전과의 주인공이 아이러니하게도 무공훈장으로 연계 결착 되어 부끄럽게도 무공수훈자로 둔갑한 경우가 있었다. 당사자는 물론 주위의 그 내막을 알고 있는 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적과 교전한 적이 한 번도 없이 비전투부대나 상급사령부의 행정 요원으로 근무했던 자가 서류상으로 조작된 공적서를 상신하여 무공훈장을 부당하게 받은 경우도 있었음은 과도기 국방행정의 난맥상을 말해준다. 전쟁수행 과정에서 빚어지는 이 같은 비양심적인 부당행정처리로 인한 역기능적 부작용이 사후에 개인과 조직 그리고 국가의 질서와 기강에 중차대한 악영향의 파급효과를 미치게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무공훈장과 관련되는 진중실화가 후일 현역을 떠난 다음에 참전군인과 민간인들 간에 악의 없이 사석에서 무용담이나 일화로 소개되는 경우에 본의 아니게 침소봉대 왜곡 증폭 과장 전파되어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군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민군관계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군의 대 국민 신뢰를 손상시켜 종국적으로 국민개병제도의 거부나 안보불감증 확산 같은 극단적인 회복불능의 부조리 현상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무공훈장의 수여는 엄격한 심사와 절차에 따라 받을 자격이 있는 자에게 국한되어야한다. 또한 지난날처럼 적과의 실제전투에 참여 하지도 않았는데도 장기 근속자라고 해서 의례적으로 논공행상의 일환으로 무공훈장을 부당하게 수여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들에게는 근무공로훈장이나 표창 또는 물질적 보상 등 다른 방법으로 시혜를 행하여야지, 접적(接敵) 교전을 전제한 전투행위 유공자에게 주어져야 할 무공훈장이 이런 식으로 평시에 변칙적으로 선심공세나 지휘관의 인기관리수단으로 전락 남용 안 되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강화함으로서 무공훈장의 목적가치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그 희소가치와 존엄성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전쟁 시 연합국의 국가원수로부터 받은 무공훈장의 사후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음이 큰 문제이다. 연합작전 시엔 다국적군인 연합군 지휘관의 상신에 따라 해당국의 국가원수로부터 무공훈장을 받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대한민국의 상훈법은 이에 대한 관련조항이 없음으로서 훈장의 권위를 부인하는 결과가 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주권국가간 상호 주권 존중은 물론 동맹국간에 있어서는 유대강화와 전쟁사기 앙양이란 차원에서 상호 무공훈장을 주고 받는 것이 국제관례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상훈법이 잘못되어 외국무공훈장을 상훈 대장에 기록도 하지 않으며, 전혀 수상당사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법적 근거 조항이 없으니, 이는 국제사회에서 우방국가간 호혜도모 원칙에 어긋나며 수여국가에 대한 주권 모독이다.

당국은 외국 정부가 정당하게 수여한 무공훈장을 국내 무공훈장과 똑 같이 그 등가성을 인정하도록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함으로서 무공훈장의 가치고양과 해당자의 사기진작으로 민군 관계 개선은 물론 국제친선유대 강화에 일조 하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연합국의 무공훈장을 받은 다수의 참전 노병 수훈자가 무공수훈자 대열에서 배제되어있어 울분을 토로하고 있음에도, 당국은 관심조차 없으니 이 무슨 퇴행적 보훈문화인가? 영국이나 미국 같은 선진 보훈 문화가 하루 속히 대한민국에 정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영국에서는 오늘날 가장 영예로운 무공훈장이 '빅토리아 십자장(The Victoria Cross)'이다. 빅토리아 십자장은 1856년 크림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군인에게 처음 수여됐다. '적과 직접 싸우는 상황에서 용기를 보여준 군인'으로 수훈 대상자가 한정돼 있어 주로 병사들이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받은 사람이 1353명이다. 이 훈장을 받은 사람만 자기 이름 뒤에 V.C.라는 머리글자를 붙일 수 있는 영예를 얻는다.

미국의 경우 군인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의 훈장은 '명예훈장(Medal of Honor)'이다. '전투에서 자신의 의무를 넘어선 용감한 행위 혹은 자기희생을 보여준 미국 군인'으로 한 번의 작전에서 1개 사단 당 1명만 받을 수 있도록 하여 그 희소가치가 대단하다. 명예 훈장을 받은 군인에게는 본인의 계급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기립자세로 거수경례의 예를 표하는 것이 미군의 전통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