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꿈인가 생시인가, 아리따운 천사(天使)의 도래(到來)!

지난 주초 어느날 석양 무렵 억수로 소나기가 줄기차게 퍼붓는다. 이제나 저제나 좀 잠잠해지길 한참 기다리며 멈칫 지하도 출구에 물끄러미 서있었다. 내리 쏟아지는 호우(豪雨) 속에 지나치는 행인의 모습도 뜸했다. 무념무상 망연자세로 홀로 서있는 내 앞에, 뜻밖에도 아주 청순해 보이는 묘령의 한 아가씨가 다가왔다. 해가리 양산 같은 숙녀용 작은 우산을 내밀며 가는 길을 돕겠다고 한다. 마치 절친 사이처럼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따라나섰다.

지난날 6-70년대 오락 연예계에 인기 풍미했던 프랑스 여류문호 후랑소아 싸강의 명화 “쉘부르의 우산” 인상깊은 낭만의 짙은 잔상이 스친다. 십여분 거리의 노면이 온통 물바다여서 요리조리 덜 고인 틈새를 골라 지그잭으로 밟으며 곡예의 아베크(avec)를 거닐었다. 혹 누구인가 아무리 초면이 궁금해도 마치 식자 촌로들처럼 프라이버시를 벗어나 꼬치꼬치 신상을 캐어물을 수가 없어 아쉽지만 슬적 성씨와 주거동(住居棟) 정도로 물어 멈추었다.

이웃고 내 거주 동현관 앞. 헤어지는 찰라 힐긋 내 얼굴을 각인하듯 일별(at a glance)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천년의 로맨스가 응축(凝縮)하는 일순(一瞬), 만백년의 아리따운 여운(餘韻)이 계속 사라지지 않는다. 데끼고도(出來事, happening) 치고는 정녕 신의 계시(啓示)가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 희한한 사건이 아닌가.

그때 내 모습을 상기해 보자. 억수가 멎으면 비에 좀 젖을 요량으로 나서기로 맘먹고 있었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상의 겉으로 속와이셔쓰를 덮어입었다. 그러니 그 행색이 결코 고아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왜 낯설고 생경(生硬)한 연상의 이웃 나그네(senior)를 도우려 했는지 그 따뜻한 심정이 매우 궁금하다. 오직 청순소박한 여심이 고마울 따름이다.

2019. 9. 17
추하 한 두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