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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정'과 '한', 이제(二題)

 나채운

 2009-07-25 오후 2:24:00  1431

 

 


한국인의 정과 사랑

 

인간의 심적인 3대 요소를 말할 때 흔히 지(智)와 정(情)과 의(意)를 말한다. ‘지’는 이지(理智)를 말하고, ‘정’은 감정을 말하고, ‘의’는 의지를 말한다. 이 셋 중 한국에게 특별한 것이 ‘정’이라는 것이다. 이 정은 예기(禮記)에 나오는 소위 칠정(七情) 즉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惡), 욕(欲)의 일곱 가지 인간의 자연적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우리 한국인에게 특별한 것이기에 영어로나 독일어나 프랑스어나 일어 등으로도 딱 맞게 번역할 말이 없는 것이다. 사전상으로 보면 영어로는 첫째 ‘affection’을 들고 둘째로 ‘love’를 들고 있는데, 다른 한 편 ‘사랑’이란 말을 보면 영어로는 첫째 ‘love’를 들고 둘째로는 ‘affection’을 들고 있어 ‘정’과 ‘사랑’ 두 가지가 개념상으로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지만, 두 말의 다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는 어렵다.

‘정’에 대한 사전상의 정의를 보면 일반적인 정의로는 1) “사랑이나 친근함을 느끼는 마음”이라 하고, 2) 심리학적으로는 “마음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 중의 하나, 곧 이지적인 요소에 대하여 감동적인 요소를 일컫는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해석을 다 합쳐도 우리 한국 사람이 ‘정’이라는 말로 나타내고자 하는 경험적인 감상적 내용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을 더 깊이 알고자 하면 그것과 가장 유비가 되는 사랑과 비교하는 경험적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정은 사랑에 비하여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젊은 남녀 간에는 단 시일 내에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대하여, 부부간에는 결혼 후 얼마 동안의 사랑 뒤에 그 관계를 끈끈하게 오래 지속하게 하는 것은 깊은 정이다. 그것은 마치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사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어버리지 못 하는 것과 같다.


둘째, 사랑은 미움이 없는 한 마음으로의 감정이지만, 정에는 고운 정 외에 미운 정도 있는 것이 사랑과는 다른 이질적 현상이다. 그래서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도 결혼 후 아직도 깊은 정이 쌓이기 전에 사랑의 냉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고, 결혼 후 오랫동안에 고운 정과 더불어 미운 정까지 쌓인 때에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이러한 심리적인 현상은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운데 잘 나타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보면, 남진이 부른 “미워도 다시 한번”이란 노래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 것이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 바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

。。。。。。。。。。。。。。。。。

말없이 가는 길에 미워도 다시 한 번.

 

또 조용필이 부른 노래 “미워 미워 미워”란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잊으라는 그 한 마디 남기고 가버린

사랑했던 그 사람 미워 미워 미워.


위의 노래에서 ‘미워’라는 말은 ‘사랑’의 반대어인 미움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속에 쌓여서 화석처럼 굳어서 떨칠 수 없는 ‘정’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사랑은 그 마음에 일어나는 대로 잘 표출되는 현상이지만, 정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오랫동안 쌓여 있는 것으로서 잘 표출되지 않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이 ‘사랑’이란 말을 남녀 간에 수 없이 말하지만, 한국인은 부부간에 ‘사랑한다’라는 말을 여간해서 잘 쓰지 않는다. 흔히 텔레비전에서 노부부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했느냐고 물어 볼 때 거의가 결혼 후 40년, 50년 같이 살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고백을 하는 경우가 보통이며, 방송 담당자가 그 고백을 해보라고 하면 마지 못해서 수 십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해요”라고 하고는 쑥스러워하는 것을 본다. 그러한 부부들은 얄팍한 사랑보다도 마음 속 깊이 쌓아온 정이 있기에 달리 사라의 언어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 부부들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살면서도, 서양 사람들에게 그토록 흔한 사
랑의 고백을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는 말로 나타나지 않는 정으로 살아온 것이다.

넷째, 정과 사랑은 그것으로 동사를 만들 때 ‘정들다’는 자동사가 되지만, ‘사랑하다’는 타동사가 되는 것이 다르다. 정은 수동적으로 드는 것이고, 사랑은 능동적으로 하는 것인데 차이가 있다. 정은 수동적으로 들여지기 때문에 그것을 막을 수가 없고 한번 들여진 정은 떨칠 수도 없지만, 사랑은 자의로 얼마든지 자신이 안 할 수도 있고, 또 거부할 수도 있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는 것이 떨칠 수 없는 병과 같기에 향수를 영어로 ‘homesickness’라고 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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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슬픔과 한(恨)

 

한국인만이 유별하게 가지는 또 하나의 심리적인 현상은 ‘한’(恨)이라는 것이다. 한자 ‘恨’의 구성이 ‘情’과 마찬가지로 마음 심(心,)변인 것이 같은 범주의 심리적 현상임을 가리키고, 그 오른쪽의 ‘艮’(간)자와 더불어 회의문자(會意文字)를 형성하거니와, ‘艮’자는 ‘그치다’(stop) 또는 ‘끝’(limi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감정이 정지를 하고, 그것이 끝에까지 이르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 뿌리(根)가 땅 속에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 속의 어떤 슬픔이나 상처를 정지시켜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한’도 정과 같이 다른 외국어로는 딱 맞는 말이 없는 것이다. 영어의 ‘deploring’도, 독일어의 ‘Groll’도, 프랑스어의 ‘chagrin’도, 일본어의 ‘うらみ’(우라미)도 뉘앙스로 일치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말로도 ‘恨’ 자가 들어가는 말로 ‘한탄’도 있고 ‘원한’도 있으나, 단지 근사치일 뿐 동의어(同義語)는 못 된다. 슬픔의 감정(grieve, feel sad)이 있기도 하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한’은 극한 슬픔과 답답함이 오랫동안 쌓여서 마음에 맺혀 있는 상태를 이르는 감정으로서, 흔히 “한이 맺힌다”라고 하고, 오랜 소원이 달성된 상태는 “한을 풀었다”라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서법고시 합격을 위해 9년 간 공부하여, 세 번의 실패 후 네 번만에 합격을 하여 “한을 풀었다”라고 했다. 6·25 전쟁 후 심연옥이 부른 ‘한강’이란 노래에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쟁의 슬픈 역사를 회상하면서 “목매인 물소리는 오늘도 우는구나.
가슴에 쌓인 한을 그 누가 아나”라고 노래 불렀고, 손인호는 남북의 분단으로 그리운 고향에 가지 못하는 답답함을 “한 많은 대동강아!”라는 노래로 실향민의 맺힌 한을 풀어 주었다.

‘한’은 극한 슬픔이 쌓이고 쌓여서 맺혀 있는 상태를 말하는 점에서 단순한 슬픔이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과 다르다. 한은 그 슬픔이 단지 시간이 지남을 따라 쉽게 없어지지 아니하고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말하므로 이 세상에서 풀 수 없는 한처럼 큰 슬픔은 없다.


한이 우리 민족의 특별한 공감적 심리가 된 것은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만들어 낸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사람이 한을 간직하며 살았고, 또 그 한을 끝까지 풀지 못한 채 죽어간 사연이 참으로 많다. 그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마침내는 사약을 받고 16세로 죽은 단종의 한은 얼마나 컸으며, 그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일을 꾸미다가 일망타진되어 비참한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한은 얼마나 컸으며, 천하의 영웅적 기개를 떨쳤으나 간신의 모함에 걸려 26세의 비명으로 죽임을 당한 남이(南怡) 장군의 한은 얼마나 컸으며, 병자호란 때 왕으로서 말할 수 없는 굴욕을 당하면서 삼전도(三田渡=松坡)에서 청(淸)나라 태종 군문에 항복문서를 올렸던 인조의 한은 얼마나 컸으며, 안중근 의사를 위시해서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고서도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한은 얼마나 컸으랴?

인류의 전쟁사에서 6·25 한국전쟁처럼 참혹하고 처절한 전쟁은 없었다. 그것은 우선 동족간의 민족상잔이란 점에서 그러하고, 그 피해가 제2차 세계대전보다도 더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몇 10만명도 넘는 전쟁미망인과 전쟁고아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때 불렸던 이해연의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인민군의 쇠사슬에 묶이어 다리를 절며 북으로 끌려가는 남편을 보고 부른 아내의 노래였으니, 그들의 맺힌 한은 무엇으로 다 표현하겠으며, 아직도 살아 있는 그들의 아내나 자녀들의 한은 얼마나 클까?

우리 민족에는 또 한 가지 특유한 한이 있으니 그것은 유교적 전통으로 가부장적 사상이 유난히 깊은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갖는 한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층층 시하에서 가난한 시집살이와 남편의 사랑도 못 받고 “울 아부지 날 맹글지 말고 맷방석이나 맹글 것이지”하는 노래와 같이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고 한 평생 여자로 태어난 팔자타령을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슬픔과 한은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사별하는 것일 것이다. 자녀의 사별 즉 ‘참척’(慘慽)에 대하여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은 “부모가 돌아가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것이다. ‘慘慽’이란 한자어는 두 글자가 다 마음심변(
)이며, 그 훈독(訓讀)은 ‘슬플 참’과 ‘슬플 척’자이니 그 말의 글자 자체가 그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참척의 경우에 흔히 먼저 죽은 자식은 부모에게 최대의 불효를 하는 것이고, 부모는 죄인이 된다고 하는 말을 한다. 이 말의 뜻은 자식은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과 한을 안겨주는 일이기 때문에 불효라는 것이요, 부모가 죄인이 된다고 하는 말은 자식에게 그처럼 큰 불행을 당하게 한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자책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생각은 자식에게나 부모에게나 위로의 말이 아니라 도리어 한을 더 지속시켜 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

아, 한(韓)민족에게 한(限)이 없는 한(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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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석나채운

2009-07-26 (8:28)

 

한민족의 본질이고 속성, 우리 속마음의 구석구석을 한량없이 파고 들어 골깊은 심정을 감동깊히 울려주는
글귀들입니다. 먼저 나를 알고 너를 살펴 내일을 뛰자! 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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