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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정신

 나채운

 2010-05-11 오전 8:14:00  917

 

 

선비 정신       <2002. 8. 4>

 

‘선비’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학식이 있되 벼슬하지 아니한 사람” 또는 “학문을 닦는 사람” 이라 되어 있다. 이 말은 ‘선비’ 에 대한 풀이이지, ‘선비 정신’ 에 대한 풀이는 아니다. 그리고 국어사전에는 ‘선비정신’ 이란 말이 따로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선비정신’ 에 대한 풀이는 사람에 따라 얼마간 다를 수가 있거니와, 여기서 나는 나 나름대로의 선비정신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선비정신은 첫째로 무엇보다도 학문을 좋아하고 다른 세속적인 욕심을 갖지 않는 마음이다. 학문을 좋아하니 학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벼슬도 하지 않으니, 국어사전의 풀이는 일단 옳다. 우리 조상들 가운데는 그러한 진정한 선비들이 많았는데, 오늘날 그러한 선비를 보기가 연목구어(緣木求魚)처럼 어렵다는 현실이 통탄스럽다. 학문으로 일생을 살겠다고 오랜 세월 동안 학문을 해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대학총장까지 되어도 무슨 장관 자리 하나라도 주면 얼싸 좋다 하고, ‘사명’이라 했던 교수 자리도 헌 신짝처럼 버리고 벼슬을 택하니 그런 ‘학문배’ 는 진정한 선비가 아니다. 세속적인 욕심이란 물질에 대한 욕심을 포함함은 물론이다. 인간의 욕심 중에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강렬한 욕심이 이 물질욕이거니와, 진정한 선비는 이 물질욕을 갖지 않은 사람이다. 물질욕을 갖지 않을 뿐 아니라 부(富) 를 혐오시(嫌惡視)하고 오히려 가난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것이 곧 ‘안빈낙도’(安貧樂道) 의 경지이다. 신라 말에 난세를 떠나 가야산에 들어가 시문으로 여생을 마친 최치원이나, 조선왕조 세조 때에 역시 난세를 피하여 금오산에 들어가 도학으로 여생을 마친 김시습의 생은 다 같이 탈속의 초연한 선비정신을 보이는 것이다.

선비정신은 둘째로 충절의 정신이다. 많은 학문을 통해서 얻은 지식, 특히 역사가 그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충절은 옛날 왕정시대에는 왕에 대한 충성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나라사랑의 마음이다. 앞에서 말한 세속적인 욕심과는 상반되는 것으로서, 그것은 사리사욕과 상반되는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는 우리나라 역사상 수많은 충절의 선비를 본다. 한 예를 들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에 동참했던 집현전의 학자들은 모두가 당대의 가장 훌륭한 선비들로서, 죽기까지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킨 사육신 (死六臣) 이 그 가운데서 나왔다. 그러한 점에서 변절하여 세조 밑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신숙주는 선비정신을 지키지 못한 실패한 선비이다. 그런가 하면,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충절가(忠節歌)를 불러 순국한 정몽주의 충절은 하나의 진정한 선비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비정신은 셋째로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는 정신이다. 진리와 정의의 구현을 생의 제일 또는 절대적인 목표와 원리로 삼는 삶이다. 진리보다는 거짓이 팽배하고, 정의보다는 불의가 편만한 뭇 사람들 가운데서 끝까지 고고(孤高)하게 진리를 추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문의 전당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도 하거니와,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리와 정의를 가르쳐 그것을 인류사회에서 구현하는 데 있는 것이다. 선비정신은 국가 사회의 부정과 불의 부패 등에 결코 무관심할 수가 없다. 그가 가진 지식과 양심을 따라 사회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아는 것이 선비정신이다.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이라고 한 것과는 달리, 진리와 정의를 부르짖는 데는 심히 외로운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만큼 거짓과 불의는 오늘의 사회에 일반적인 현상이 된 것이다.

선비정신은 넷째로, 비판정신이다. 비판이란 어떤 사실이나 사상 또는 행동의 진위(眞僞), 우열(優劣), 가부(可否), 선악(善惡) 등을 판정 또는 평가하는 것인데, 이러한 비판은 흔히 비판의 주체와 객체 간에 있을 수 있는 개인적인 인간관계로 말미암아 흐려지거나, 편견 또는 사심(私心) 으로 공정성을 잃는 수가 없지 않다. 선비정신은 이러한 데서 벗어나 누구에 대해서나, 무엇에나 공평무사하게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 비판의 대상이 자신의 조국이라도, 그가 소속하고 있는 어떤 정치단체나 사회단체나, 개인적으로 막역지간인 스승이나 선배나 동료에까지라도 공익을 위해서는 정당한 비판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선비는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는 욕을 먹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비는 그러한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공자가 말한 군자의 요건인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은 바로 그러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는 어떤 누구에게도 양보나 타협이 있을 수 없이 끝끝내 꼿꼿한 것이 선비정신이다. 그와 동시에 선비는 그의 깊은 학문 때문에 독단과 독존에 빠져도 안 되며, 현학적(衒學的) 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위와 같은 이론에서 볼 때 선비정신은 단순히 학문만을 하고 벼슬하지 않은 소극적인 정신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충절과 진리 정의에 대한 의지와 냉철한 비판정신까지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는 명목상의 선비는 많되, 바른 선비정신을 가진 진정한 선비를 볼 수 없는 것이 심히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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