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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시역설 (주자 권학시)

 나채운

 2012-03-11 오후 1:34:00  975

 

 


명시 역설 (名詩 逆說)  <
나채운, 한국장로로신문 2012. 2. 11 게재>

 

양력만을 쓰는 서구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양력 음력을 함께 쓰는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신년맞이를 두 번이나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두 새해맞이는 똑 같은 의미와 감상을 가지고 똑 같은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양력 1월 1일은 ‘신정’(新正: 새해의 첫머리)으로서 국가적인 공휴일로 지키는 것이요, 음력 1월1일은 ‘구정’(舊正: 옛달력으로 ‘설날’)으로서 한갓 민속상의 명절로 지키는 것으로 그 의미와 감상을 달리하고 있다. 그 다름을 표면상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면 신정은 지난해를 지나서 새해를 기쁨으로 맞이하는 감상(感想: ‘Happiness’)을 가지는 것과는 달리, 구정은 지난해를 잃어버리는 아쉬움의 감상(感傷: ‘Sentimentality’)을 갖는다는 점에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나는 지난 12월 20일 미국에 있는 자녀들을 만나러 갔다가 꼭 한 달 만에 귀국하여 문득 그전에 갖지 못했던 감상을 하면서 좀 별난 글을 써보는 것이다. 나는 비교적 외국 여행을 많이 했으면서도 별로 힘든 것을 느끼지 못 했는데, 이번에는 그전과는 달리 힘 든 것을 느끼면서 그것이 산수(傘壽, 80세)를 맞은 노약(老弱)의 탓이 아닌가 생각이 되면서 소년시절에 애송하던 주자(朱子) 권학문(勸學文)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少年易老”라는 구절이 떠오르면서 그것을 부정하고 역설적으로 “少年己老”가 생각되어 다음과 같은 역설의 시를 지어 보았다. 이제 두 시를 대조적으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주자의 권학시 (필자의 풀이)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一寸光陰不可輕 (잠깐의 시간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未覺池塘春草夢 (지당의 봄풀이 아직 꿈을 깨지 못 하고 있는데)

階前梧葉己秋聲 (집앞 오동나무 잎에서는 벌써 가을소리가 들리누나)

 

위의 본문에 대한 필자의 역설시는 다음과 같다.

 

少年己老未成 (소년은 이미 늙었으나 학문은 아직도 이루지 못했으니,

一寸光陰重千金 (잠깐의 시간도 천금같이 중하구나)

傘壽之齡到如夢 (여든 살의 나이가 꿈같이 이르렀으니)

歸天之年漸近矣” (이제는 하늘로 돌아갈 해가 점점 가까워 오는구나)

 

거유(巨儒) 주자의 권학시를 역설적으로 나의 신상(身上)에 맞춘 고백이다. 나의 일생의 기호(嗜好)인 학문은 종신(終身)하는 시간까지 결코 다 이루지 못할 것이며, 그럼으로 가속도화(加速度化)된 나의 만년의 시간은 일촌이 천금같이 중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나마도 만년의 인생은 기력이 또한 쇠하니, 청소년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인생교훈에 대한 팔십고령(필자)의 과거회고적인 감상(感傷)이 역설적인 대조를 보이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생의 애탄은 불교에서는 인생의 부정적인 면 사고(四苦) 즉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핵심에 있는 것이다. 인생의 사고 중에서 생(출생)과 병과 사(死)는 순간적 또는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노(老: 늙어감)는 일생을 통하여 지속적인 것이어서 참으로 비극적인 것이다. 영어로 나이를 묻고 대답할 때 출생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How
old are you?”(문자적으로 “너 얼마나 늙었느냐”)라고 묻고, 대답에도 ‘I am .... years old.’라는 말을 쓰는 것도 바로 그 인생의 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이 늙어간다는 현상은 인생의 불가항력적인 실상이요 비극이다. 그래서 성경도 그 실상을 강도있게 술회하고 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 1:24),


“겉사람은 후패하나 ...”(고후 4:16),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 등

 

베드로 바울 모세의 인생론을 여실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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