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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날 단상

 나채운

 2012-06-03 오전 7:46:00  771

 

 


스승의 날 단상
(斷想) 2012. 5. 15

 

우리의 육신이 세상에 나서 자랄 때 부모의 은덕이 큰 것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다른 동물과 다른 필수적인 것이 교육이라면 거기에는 스승의 은덕이 있음을 잊을 수가 없다. 5월 15일은 우리가 모두 기억해야 할 ‘스승의 날’이다.

 

서양과 동양을 크게 다른 것으로 비교해 본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말할 수 있지만, 서양이 과학과 기술에 앞섰다고 한다면 동양은 윤리와 도덕을 중요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승에 대한 존경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뚜렷한 증거가 ‘군사부 일체’(君師父一体)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즉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누구나 존대하고 공경할 대상으로서 같다는 것이다. 임금에 대한 섬김이란 왕정시대가 아닌 오늘에는 큰 의미가 없으나, 스승에 대한 존경과 섬김은 오늘에도 결코 없어질 수 없는 윤리인데도 실제로는 거의 실천되고 있지 않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하기야 친 부모에 대한 효도도 잘 실천되지 않고 있는 실정임에랴?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다른 나라에 없는 ‘스승의 날’이 있는 것만이라도 아주 명맥이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을는지?

 

제자가 스승을 존대해야 한다는 데 대한 한 가지 교훈적인 속담으로 “스승은 그 그림자도 밟아서 안 된다”는 말을 우리는 모두 잘 안다. 이 말은 본래 일본어로는 “三尺去って師の影を踏まず”(석자 떨어져서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로서 한국과 같은 맥락의 교훈이다. 일본어로는 또한 “一日爲師, 終身爲父” 즉 어떤 분을 스승으로 모시면 평생에 아버지를 모시는 것과 같이 존대해야 한다고 까지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왕정시대에 훌륭한 왕 중에는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왕 스스로가 배움이 필요하여 개인적인 스승을 모시고 선정을 베풀기에 힘쓴 사례도 볼 수 있다.

왕이 자신의 선정을 위하여 덕행이 높은 스승을 두어 국사(國師) 또는 왕사(王師)의 신분을 둔 것은 고려 광종시대부터(968년)의 일로서, 국사는 국가적 사표(師表)가 된다는 점에서 왕사보다 우위에 있었다. 고려가 불교를 국교로 삼은 결과로 국사 또는 왕사는 다 고명한 승여가 되었는데, 그러나 고려 말기에는 불교가 타락하여 공민왕 때 신돈이란 승여가 왕사와 같은 직책을 수행하면서 국정을 어지럽혀 고려의 멸망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이씨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자신의 스승(王師)으로 무학대사를 등용하였으나 이씨 조선에서는 배불(排佛) 정책을 씀으로써 그러한 제도도 없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여러 인간관계에서 신분이나 직책을 들어 호칭을 쓸 때,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존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선생’이란 말일 것이다. 호칭하는 이름 다음에 붙이는 신분으로 ‘선생님’이란 말처럼 다정스럽고 친근감 있는 말이 없을 것이라 느껴진다. ‘선생님’이란 말은 ‘교수님’이란 말보다도, ‘박사님’이란 말보다도 훨씬 정답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이러한 느낌은 우리말에 대한 바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공감을 가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실제로 느껴 보았는데, 대학교 국어학 교수로서 목사가 되고자 장신대에 들어와 나의 학생이 된 사람 중에서 나에 대하여 언제나 ‘선생님’으로만 부르는 것을 듣고 우리말을 바로 쓰는 것을 느껴본 것이다.

스승의 날에, 나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을 왕정시대의 왕같이, 우리의 소중한 어버이같이 우러러 보며 ‘스승의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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