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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록예찬

 나채운

 2012-06-10 오전 8:45:00  780

 

 


신록예찬 
2012. 6. 6

 

만화방창(萬化方暢)의 봄이 지나가고 이제는 신록(新綠)의 계절이 되었다. 산록(山麓)이나 연도(沿道)의 숲이 모두 초록(草綠)의 옷을 입어 녹음방초(綠陰芳草) 여름이 완연하다. 울긋불긋한 봄의 꽃동산과는 확실히 다른 색감(色感)을 주니 이제는 눈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상이 다르다.

녹색은 봄의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여인의 화상(華裳)을 연상케 하는 것과는 달리, 녹색 한 가지로 온 산과 숲을 다 물들인 것이 남성의 젊음을 그대로 보이는 것임에 틀림없다. 글 제목을 “신록예찬”이라 정하니 수십년 전 고등학교 시절에 국어책에서 본 민태원의 “청춘예찬”이 바로 떠오르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몇 구절이 생각난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

이 멋진 문장을 외우면서 공감했던 그 당시에는 문자 그대로 ‘청춘’과 ‘신록’을 접합시켜서 그 동일성을 실감했지만, 지금 산수(傘壽, 80세)를 지낸 나로서는 청춘과 신록의 관련에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슬프다. 인간이 이 세상에 출생하는 순간부터 누구도 예외 없이 시계의 초침(秒針) 소리를 따라 늙어가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래서 영어와 독일어에서는 나이를 묻는 말은 어린애에게라도 문자대로 하면 “너는 얼마나 늙었느냐”(영어의 ‘old’와 독일어의 ‘alt’)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도 우리말처럼 “세 살입니다”라고 하는 말은 “나는 3년 늙었습니다”(I am 3 years old)이니 우리 어감으로는 우스운 말이다. 그러나 사실로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출생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늙어가는 것이다.

인간이 시간을 따라 늙어간다는 것은 불교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대로 인생의 사고(四苦) 중 하나이거니와,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의 모든 시계를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육신의 노화(老化)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생각만으로라도 젊음을 누려보자는 것이 모든 사람의 공통심리일 것이다. 그래서 고희(古稀, 70세) 이상의 노년들이 모이는 단체 이름도 상록회(常綠會)라고 하니, 이는 “언제나 푸른”(영어 evergreen)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젊음을 누리는데, 그러므로 젊은 노인으로 살 수도 있고, 늙은 청년으로 살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에 신학교 동기생 일행이 서울 용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춘천에 갔는데 그 전철 이름이 ‘청춘’인 것을 보고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라 느꼈다. 무궁화호보다 훨씬 빠른 것은 물론, 내부 시설이 참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청춘’이라는 열차 이름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이 청춘호 열차는 젊은 사람들이 탈 차가 아니라 최소한 늙은 사람들이 타야 할 차라고 생각해 보았다.

자연의 젊음을 볼 수 있는 이 신록의 계절에 그 푸르름을 예찬하면서 고희, 희수, 산수까지 지났을지라도 저 싱그러운 초목을 보는 마음으로 젊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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