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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고: 진리와 자유

 나채운

 2013-07-21 오전 7:23:00  557

 

 

[논고論考: 진리眞理와 자유自由, <주: 나채운 목사, 전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장>]



論考 “진리와 자유”

진리와 자유는 온 인류가 추구하는 인간생활의 기본적 요건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두고 돌로 치려고 할 때 자기를 믿은 유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8:31-32).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갈 5:1).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포함한 불신의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죄의 종인 것을 지적하시고, 다음,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자기의 참된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게 되고 그에 따라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언급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물론 일반사회에서 쓰는 개념과는 다소 다르지만, 이 두 가지 큰 주제와 그 둘의 상호관계를 언급하셨다.

역사상 위인들의 삶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독재자 히틀러에게 항거하여 순교한 본회퍼(Bonhoefer), 로마교황에 항거한 마르틴 루터는 그들의 생명과 일생을 진리와 자유를 위해 바쳤으며,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일본의 저명한 기독교 지도자 우찌무라 간죠(內村鑑三)는 진리를 증명하는 것으로 자연과 인간과 성경을 들기도 하였다. “법의 정신”의 저자 몽테스큐는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권리이다” 라고 하여 자유와 방종을 구별하였다.

우리나라 대학(大學)의 삼대(三大) 명문, 흔히 ‘SKY’(Seoul, Korea, Yonsei의 머릿자)라고 일컬어지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교육이념과 교가에 진리와 자유를 다 같이 주창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서울대는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말에서 ‘진리’를 교가에 나타내고, 연세대는 기독교 대학이어서 자연히 성경(요 8:31)에서 진리와 자유를 취택하고, 고려대에서는 그 두 가지 이념에다가 ‘정의’를 추가한 것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1960년의 4·19 민주혁명 때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그 하루 전날(4월 18일) 시위를 함으로 그 다음날의 전국적인 학생혁명을 유도하였다. 고려대학교 교가에는 “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이라는 어구가 뚜렷이 눈에 뜨인다.

사실 우리나라 3대 명문의 창학이념이나 역사를 보면 고려대학은 서울대나 연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역사성이 있는 것도 또 한 가지 사실이라 할만하다. 즉 서울대학교는 일제(日帝)가 세운 경성제국대학을 한국의 교육으로의 탈바꿈으로 계승한 것이요, 연세대학은 세브란스의과대학과 병합함으로 미국의 정신을 계승한 데 대하여, 고려대학교는 초대교주 이용익(이조 고종 때의 애국자), 손병희(3·1독립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총 대표), 김성수(이승만 정부의 부통령) 등이 계승하여, 일제시 보성전문학교를 육성하고 민족정신을 함양한 특징을 가졌다. 흔히 고려대학교를 ‘민족의 대학’이라고 부르게 된 배경에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일제시대에도 민족정신을 강하게 가졌던 데 유래하는 것이다.

흔히 대학을 일컬어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일컫는다. 그 말은 진리를 탐구하는 최고의 기관이란 뜻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이상이요 가치이다. 생리적으로는 인간과 유사한 다른 고등동물과도 다른 인간의 특성은 진리를 분변(分辨)하는 것이요, 고등동물에게는 진리가 삶의 기준이 아니라 오로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생존 본능이 있을 따름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세계에서 가지는 윤리와 도덕도 없으며, 진리가 삶의 최고의 기준과 가치로 존재할 수도 없다.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인 진리의 다른 한 면으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인간의 이상이다. 인간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그의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것과는 달리 인간이 자유를 누리는 것은 흔히 타의적(他意的)인 것이요, 자의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를 위하여, 또는 누려온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일제시대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자유를 잃어버렸고, 그 자유를 도로 찾으려고 1919년 3월 1일에는 전 민족저인 독립운동이 일어나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 만세를 불렀으나, 일제의 억압으로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투옥 처형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자유는 개인적으로도 중요할 뿐 아니라 민족적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것을 우리는 실제로 경험하였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자주 독립 국가가 된 대한민국은 헌법의 초두에 국민의 기본권에 자유권을 보장하고 있다.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 전제군주국가나 공산독재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법적 제도적 보장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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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우에는 명문대학이라 하면 소위 아이비 리그(Ivy leage) 7개 대학을 들고 그 중에서 다시 3대 명문 즉 ‘Big three’로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연대 순)을 든다. 이 세 명문은 실제로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이고 각기 전통과 특징을 달리하면서 제도적으로 협력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 3대 명문에서 우등생은 소위 조기 입학(early action)으로 어느 대학이나 미리 입학을 할 수 있는 제도이다.

미국의 3대 명문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한 대학은 프린스턴신학교와 밀접한 관련(같은 장로교회의 창립)이 있는 프린스턴대학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미국유학을 하는 데 우리나라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미국 학력을 한 가지 참고로 삼을 수 있으리라 본다. 이승만의 미국 학력은 먼저 조지 워싱톤(George Washington) 대학에서 수학을 하고, 다음 하버드대에서 석사 과정을 하고, 박사과정은 프린스턴대학에서 수학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학위논문을 써서 정치학 박사가 되었다. 그가 소위 미국의 ‘Big three’(3대 명문) 중에서 프린스턴대학을 선택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프린스턴대학의 총장은 소위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하고 미국 대통령을 지낸 윌손(Wilson)이어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승만에게 정신적으로도 힘이 될 수 있는 지도자였다. 한편 이승만은 프린스턴신학교 기숙사 (Hodge Hall 411호)에 기숙하면서 신학공부도 한 것이 프린스턴신학교 한국인 졸업생 명단에 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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